월드뉴스 > 2018년 미·중 무역 갈등, 씨앗은 2001년 뿌려졌다

2018년 미·중 무역 갈등,

씨앗은 2001년 뿌려졌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점점 격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모두 2500억 달러(약 279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매기고 있다. 미국의 중국산 수입 규모 5055억 달러의 절반이 대상이다. 중국도 1100억 달러 규모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 갈등이 악화일로다.

중국, 2001년 WTO 가입 뒤 고성장
글로벌 금융위기 뒤 개방 속도 늦춰
‘중국제조 2025’ IT 자강 돌아서

미국, 9·11에 중국 추격 방관하다
거대시장·일자리 줄자 패권 경쟁

국제 사회의 관심은 미·중 무역전쟁의 종전 시점으로 모인다. 현재로썬 빠른 종식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머지 중국산 수입품 모두에 곧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는 “무역전쟁은 앞으로 20년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만큼 갈등이 해묵고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앞날을 내다보기 위해서는 갈등의 뿌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미·중 무역갈등의 시작은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시장 경제에 편입되면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가입을 주선했다.

중국도 적극적이었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양보를 하면서 가입 자격을 갖췄다. 가입 후에는 반년 만에 WTO 가입 의정서와 일치하지 않는 중국 법령과 규제 2600건을 폐기하거나 수정했다.

WTO 가입으로 중국 수출은 날개를 달았다. 해마다 두 자릿수로 성장하며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 8.6%였던 전년 대비 수출 증가율은 2002년 30.1%, 2003년 50.7%, 2005년 18%로 뛰었다.

이에 따라 경제 성장률도 고공 행진했다. 2001년 8%대였던 성장률은 2003년 10.04%, 2005년 11.4%로 올랐다. 2007년 14.2%로 정점을 찍었다. 중국은 WTO 가입 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 성장의 황금기를 누렸다.

세계 1위 경제 대국 미국과의 격차를 점점 좁혔다. 2006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조8000억 달러였다. 당시 미국 GDP는 13조8000억 달러로, 중국의 5배였다. 그 비율은 지난해 1.6배로 좁혀졌다. 2017년 중국 GDP는 12조2000억 달러, 미국은 19조3000억 달러였다.

11년 동안 중국 GDP가 4.3배 늘어날 때 미국은 1.39배 증가에 그쳤다. 2006년 중국이 세계 GDP에서 차지한 비중은 6.14%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15.1%로 커졌다.

중국의 부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미국은 왜 올해부터 관세 전쟁을 벌이며 문제로 삼은 걸까. 그동안 미국인들이 중국의 부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중국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하다.

중국보다 더 거대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테러와의 전쟁이다. 2001년 9월 11일 항공기를 이용한 알카에다의 자살 공격 테러가 미국을 강타했다. 3개월 뒤인 12월 진행된 중국의 WTO 가입은 테러 공포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했다.

코너 센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이후 몇 해 동안 미국의 초점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에 맞춰졌다. 중국의 부상이나 그것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관심 밖이었다”고 말했다.

테러와의 전쟁이 마무리되자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다. 미국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올랐다. 저소득층 대출자들이 원리금을 갚지 못하게 되면서 초대형 모기지론 대부업체들이 줄줄이 파산했다.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대됐다. 경기 침체가 시작됐다. 또다시 몇 년간 미국의 관심은 금융위기 극복에 쏠렸다.

미·중 경제 갈등의 씨앗이 2001년 뿌려졌다면 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자랐다. 당시 중국은 세계 금융시스템에 깊이 연관되지 않았다. 덕분에 금융위기의 직접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정작 충격은 수출 급감에서 왔다. 경제 위기를 겪는 미국·유럽이 수입을 줄였기 때문이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불과 몇 달 만에 수출이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해마다 20~50%씩 증가하던 수출은 2008년 11월부터 12개월 동안 마이너스 성장했다. 2000만 명이 실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가장 컸던 2008년 4분기 중국 성장률은 7.1%로 떨어졌다. 위기 직전인 2007년 2분기 성장률 15%와 비교하면 반 토막 난 셈이다. 중국 정부는 대대적인 경기 부양책을 펼쳤다. 고속열차와 고속도로, 주택 건설 계획을 줄줄이 내놨다. 금세 두 자릿수 성장률을 회복했다.

정작 부작용은 다른 데서 나타났다. 시장 경제 체제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롤모델 미국이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되자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데이비드 달러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금융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점진적이면서도 일관되게 개혁 개방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월가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개혁에 소극적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개혁개방의 속도가 줄었다. 지금 중국의 금융·통신·정보기술(IT) 부문 개방 지표는 1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외국 기업은 합작회사를 통해서 중국에 투자할 수 있고, 첨단 기술을 중국 파트너와 공유해야 한다.

달러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언젠가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가설은 항상 유효했지만, 금융위기가 시점을 앞당겼다”고 말했다.

물론 중국의 경제 개방으로 미국도 이익을 누렸다. 미국 소비자는 중국산 제품을 싼값에 썼고, 기업은 거대한 중국 시장을 얻었다. 하지만 2015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첨단제조업 육성 정책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2025년까지 바이오 의약, 로봇, 통신 장비, 항공우주, 전기차, 반도체, 의료기기 등 첨단 분야에서 기술 자급자족을 달성해 제조업 초강대국으로 발전하겠다는 전략이다. 미국은 거대 시장도, 미국 내 일자리도, 기술 리더십도 잃을 공산이 커졌다. 미·중간 경제 패권을 둘러싼 전쟁이 끝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글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
제공 : 중앙일보

  • 위비톡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이 코너의 다른기사